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-오스트리아 관계 (문단 편집) === 근세 === > [[합스부르크 제국]]의 특수성은 그 다종족적, 다민족적 특성이 아니라 이 다민족 제국을 유지시킨 요인에 있었다. 합스부르크 제국의 [[독일인]]([[오스트리아인]])은 특별히 인구가 많거나 군사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었다. 즉 [[오스만 제국]]의 팽창이 이들 기독교 영토에 가하는 더 큰 위협이 없었다면, [[합스부르크 가문]]은 결코 유럽 동남부에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거나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. 한마디로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대한 방어 세력으로 생겨난 제국이었다. 동남부 유럽인들은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 중 차악으로 어쩔 수 없이 합스부르크를 택했다. >---- > 민족 / 아자 가트, 알렉산더 야콥슨 [[튀르키예]]와 [[오스트리아]]는 [[오스만 제국]]과 [[합스부르크 제국]] 시절부터 숙적이었다. '''[[제1차 빈 포위]]''' 때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[[오스트리아 대공국]]의 수도 [[빈(오스트리아)|빈]]이 점령당할 뻔하기도 했다. 이후 [[30년 전쟁]]이 발발하자 [[보헤미아 왕국]] 대표들이 오스만 제국에게 개입해 달라고 요청했으나, 당시 [[사파비 왕조|사파비 페르시아]]를 주적으로 여겼던 [[무라트 4세]]는 이 요청을 기각했다.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[[헝가리 왕국]]을 삼분할해 지배하다가[* [[합스부르크 제국]]의 [[헝가리 왕국]], [[오스만 제국]]의 [[오스만 헝가리]]와 [[헝가리인]]의 자치공국이면서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이었던 [[트란실바니아 공국]].] '''[[제2차 빈 포위]]'''와 뒤이은 '''[[대 튀르크 전쟁]]'''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이 헝가리 왕국 전역을 지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